어린이 날 다음날이었다.
몸에 대한 이상을 느꼈던 아내와 함께 산부인과에 가서 우리에게 아이가 생겼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9달… 우리는 때로는 즐거워하고, 때로는 불안해하며 우리가 책임져야 할 한 생명을 맞을 준비를 했다.
주변 육아 선배들의 축하와 그 힘듬의 정도를 자랑하듯이 “그래도 뱃속에 있을 때가 제일 좋은 거야~ 나오면 다시 집어넣고 싶어 질 걸?”라고 해주는 조언 그리고 책, 인터넷 등등 정보의 홍수에서 헤엄쳐 다녔다.
그래도 사실 나에게 내 유전자를 물려받은 생명이 생긴다는 사실은 실감은 나지 않았고 준비도 막연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 포스팅에서도 그랬듯 난 닥쳐야 뭔가를 하는 성격이다 보니…
그러다가 지난 12월 18일 금요일 병원을 갔는데 의사선생님의 말이 3~4일 안에 나오겠는데?라는 말에 난 연달아 있던 회식을 취소하고 준비에 들어갔다. 딱 회사 송년회인 23일 하루만 빼고 23일 아침부터 아내에게 몸상태를 계속 체크하며 혹시 몰라 집 근처에 회식 장소를 잡고, 난 불안과 기대와 취함을 즐기며 즐겁게 음주를 즐겼다. 그리고 집에 가서 아내와 잠이 들었는데 배가 갑자기 아프단다. 뭐 이런..
바로 병원에 달려가서 우리는 아이를 맞을 준비를 했다. 초산이라서 오래 걸리는지 고통만 심하고 잘 안 나왔다.
아내는 죽을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9시간을 그렇게 버텼다… 잠도 못 자고 컨디션도 안 좋고 힘도 다 빠져버린 상황에 아이는 아직 준비가 안되었다고, 수술로 아이를 나아야 할지도 모른다고 하더라.
엄청 짜증이 났다.. 9시간 동안 우리는 뭘 한 건가. 이럴 거면 처음부터 그냥 고생 않고 수술할걸…
아까워서라도 좀 더 참아보자는 간호사의 말에 나는 좀 더 버텨보자 했지만, 당사자인 아내는 죽을 표정으로 수술하자고 했다. 그래서 바로 수술하기로 결정하고 수술실에 들어간지 10 분도 안돼 우리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리고 한 시간 후 마취에 취해서 멍한 아내가 실려 나왔다. 둘을 보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아들을 보면서 ‘이놈의 자식 내 마누라를 괴롭히다니 빨리빨리 나올 것이지’와 아내를 보면서는 친한 후배의 축하 코멘트처럼 ‘저 어린것(아내를 칭한다)이 무슨 죄가 있다고’라며 짜증, 분노, 기쁨, 희열 모든 감정이 한 번에 올라왔다.
그렇게 우리의 아이는 태어났다. 2.98kg에 12월 24일 오전 10시 59분이었다. 이 병원은 출산 후 아이와 엄마를 격리하지 않고 직접 아이를 보게 하기 때문에 거의 잠을 못 자고 있지만 덕분에 많은 걸 배우고 알아가고 있다. 내가 분유를 타고, 온도를 재고, 먹이고, 트림을 시키고, 속싸개를 돌돌 말아 재우고 기저귀를 갈 수 있을 줄 몰랐다. 아내는 수술 후유증으로 이미 자기 몸 추스리기도 힘든 세상이었다. 덕분에 내가 육아는 아직까지 아내보다 한수 위다 ㅋㅋ 반대로 물리적으로 잠을 못 자서 첫날은 거의 죽을 뻔했다. 술 먹고 이틀을 해장도 안 하고 꼬박 잠을 안 자고 밥도 안 먹은 거니까.. 다행히 처형님께서 오셔서 눈도 좀 붙이고 그럴 수 있어서 다행이다.
아이가 태어나니 확실이 많은 것이 다르게 보인다. 우리도 저 같은 과정을 겪으며, 부모님의 사랑을 받으면서 자라 왔을 것이며, 솔직히 그렇게 아기가 잘 생긴 건 아닌데, 나에겐 한없이 예뻐 보인다. 볼 때마다 신기하고.
월요일이 되어서 평일이 되면 출생신고를 하고 아들을 위한 적금을 하나 부어야겠다. 그 돈 모아서 맥프로도 사고, 아이패드도 사고, PS4도 사고 그래야지.
앗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