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는 일이었어.

우리 부부는 아들이 생기기 전에는 싸운 적이 없었다. 항상 즐겁게 살고 서로를 배려했었는데, 최근의 경우를 보면 사소한 대화를 하다가도 감정이 상한 적이 많았다. 난 그 이유가 궁금했다.

꽤 많은 시간을 고민하고 생각한 후의 결론은 대부분의 다툼은 아들을 키우는데서의 의견 차이 때문에 생기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아 하나의 대상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 때문이구나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는 연말을 맞아 달력 작업을 하게 되었고, 아내는 예술가의 입장으로 나는 제작자의 입장으로 되어 업무적 접근을 하게 되었다. 진행 시 당연하게도, 상반된 입장과 시각을 가지는 우리는 당연히 의견 충돌이 있었고, 그때 번뜩이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 느낌은 흡사 정우의 일로 타툴 때와 같은 기분이었다.

다행이다. 시간의 흐름과 애정의 줄어듬이 아님을 깨닫게 된 순간 아내가 더 사랑스러워졌다. 아내랑 일만 안 하면 모든 게 해결된다.

아내의 외출

아내가 톡으로 이번 주 토요일에 친구들 만나러 저녁에 나가도 되냐고 물었다.

질문 또는 허락을 구하는 형태인게 너무 슬프고 미안했다. “허락받을일 아니라고 말했다.”

팀 떠나기

“올해 나의 업무 영역이 특정 서비스에 한정된 조직을 관리하는 것으로 변경이 되면서, 내 업무 방식이 바뀌었다.
기존에는 난 여러 개의 조직이 묶여있는 부문의 전반적인 방향 설계와 큰 이슈에 대해 방향 설정을 하고, 막상 내가 속해있는 팀은 각자 구성원이 업무를 알아서 하고, 문제가 생기는 경우 해결을 하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내 동료들의 일을 좀 더 정확히 상황과 방향에 대해 알고 있어야 하고, 같이 일하는 다른 팀의 분들과 좀 더 많이 이야기를 많이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게다가 내가 직접적으로 관리해야 하는 조직의 구성원이 2배가 넘게 늘어버렸다.(채용목표까지 모두 합치면 기존의 세배의 조직이 된다.) 당연히 일이 많아질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그래도 즐거움이 있었고, 눈 앞에 보이는 것을 처리하고, 그에 대한 만족감을 나타내는 대상들을 볼 수 있어서 보람되고 즐거운 나날들이었다. 힘들지만 힘들지 않았다. 그런데 조직에서는 더 큰 그림을 볼 필요가 있다고 하며 다른 업무를 부여했다. 내가 그것을 끝까지 반대했으면 안 할 수도 있었겠지만 난 그러지 못했다. 이 회사에 나를 필요로 하는 조직이 하나의 조직만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도 안 되는 자만과 잘난 척이 넘치는 인간이었나 보다.”

2018년 9월 12일에 글 감으로 남긴 글이었다.

그후 1년 동안 또다시 조직을 세 개 맡아서 정신없는 나날들을 보냈다. 많이 신뢰하는 친구의 조언 중에 “겸직을 하더라도 직책의 높낮이를 바꿔가며(팀장도 하고 실장도 하는) 겸직은 하지 않는 것이 좋아”라는 말도 무시해가며 생각을 무한으로 바꿔가며 여러 사람의 역할을 하려고 노력했다.

결론은 처참했다. 원래 나의 정신적인 주춧돌이 되는 조직은 내가 잘 모르는 조직으로 변하고 있었고, 다른 조직에도 집중을 하지 못해서 1프로도 나아진 게 있는지 모를 정도였다. 매일 같이 일찍 출근을 해도 밀려드는 업무를 감당할 수 없었고 자연히 가족에게도 소홀해졌다. 아내는 왜 맨날 일찍 출근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불평을 했지만 그냥 “일이 많아서 그래” 라면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어느 날 밀린 상반기 구성원의 업무 성과 평가를 하는데 50명이 넘는 사람을 대상으로 상세 평가를 해야 하는 입장에서 ‘난 어찌하면 이걸 빨리 대충 처리할 수 있을까? 바쁜데 평가를 왜 해야 하는 거지?’라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이 드는 순간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내 능력을 과신해서 사람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많이 늦었다. 빨리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를 옮기지는 않기로 했다. 이 회사는 나에게 너무 많은 것을 가져다주었으며, 앞으로도 많은 것을 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다만 나 자신을 과신하지 말자고 생각했다.

결심을 하고 나랑 제일 함께 오래 한 팀의 선임들에게 이야기를 했다. 팀을 떠나야겠다고, 차마 그동안 미안했다고는 하지 못했다. 지금까지 버틴 것도 그분들 때문이었다. 매번 나의 말에 한 숨 쉬면서 못난 나를 도와주던 사람들이었다. 내 고집이 더 잘될 수 있는 사람들을 막았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난 그렇게 6년을 넘게 함께한 팀을 떠나기로 했다.

써놓고 보니 거창했다. 열심히 살자

어떤 날

시작은 좋았다.
전 주의 힘든 출장에 여독이 풀리지 않았던 남편과 그리고 남편의 출장 덕에 육아를 혼자 책임져야 했던 아내의 고된 삶을 위로하려고 우리는 월요일 오전에 휴가를 내었다.

두 손을 꼭 잡고 걷는 부부에 대한 주변 분들의 질투도, 모든 것을 시원하게 때려 부수고 타노스도 싸대기 날릴 것 같은 캐럴의 시원한 펀치와, 후련한 막국수가 우리의 힘듦을 해결하는데 부족했지만, 그래도 위로가 되는 반나절이었다.

반차 후 출근해서 본 다음 포털에서는 사람을 그렇게 죽여대고도 뻔뻔하게 살아있는 쓰레기의 뉴스가 도배되어 있었고, 수많은 업무는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나를 반기고 있었어서… 행복함을 잃는데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지는 않았다.

다시 현실로 돌아와 무기력하게 일하는 중에 아내에게 연락이 왔다. 아이가 다쳤다고 했다. 난 정신없이 병원으로 달려갔고, 병원의 대기실에는 아픔과 피곤함에 잠들어있는 아이와 아이를 다치게 했다는 죄책감에 계속 울고 있는 나의 아내가 있었다. 나부터 정신 차리고 최선의 의료를 찾았다. 하지만 여기는 의료서비스가 충분하지는 않았다.

상처를 잘 치료하고 흉터가 남지 않기 위해 성형외과+응급실을 찾는 노력은 서로 미루는 제주의 병원 현실을 알게 하기에 충분했고, 돈이 되지 않는 복원 성형을 하지 않는 “제주에서 강남처럼”을 외치는 수많은 성형외과의 이런저런 핑계만 들었다. 결국 한 종합병원에서 우리는 응급처치를 하기로 했고, 아픈 애를 더 아프게 했다. 그래도 치료는 잘 받았다.

펑펑우는 아이와 아내를 끌고 집에온 우리는 밤 11시가 돼서야 우리는 저녁을 먹지 않았다는 것이 생각났다. 그래서 나는 김밥이라도 사려고 다시 차를 몰고 돌아다녔는데… 그 조차도 없었다. 그 사이 아내는 피로에 쓰러져 잠들어버렸고, 난 집 앞 자매국수에 가서 국수에 소주를 한 병 먹었다. 모라도 해야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국수와 소주잔 앞의 TV에는 쓰레기 같은 학살자의 모습이 반복해서 나올 뿐이었다.
집에 들어가서 아들과 아내를 한번은 꼭 보고 좋은 마무리를 해야겠다. 오늘의 마무리를 잘하고 싶다.

뜸했다.

오랜만에 글을 쓴다. 이 제목을 선택할때는 언제나 뭔가 민망하다.

오랜만에 글을 쓴다. 이 제목을 선택할 때는 언제나 뭔가 민망하다.

2018년의 회고나 2019년의 다짐 등을 쓸 여유도 없이 회사의 바쁘고 힘들고 어려운 업무를 수행하느라 잠시의 여유도 생기지 않았다. 마음에는 계속 글을 써야 한다는 생각을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의 죄책감만 생기고 부담은 쌓여갔다. 지금이 바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더하면 무언가를 포기할 것 같아 글을 써본다.

맥북의 단축키를 한영 전환, 스팟라이트 검색 단축키를 기본값으로 바꿨다. 맥을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 지 15년 만의 변화다. 집에 맥 장비가 늘어날 때마다 계속 마이그레이션을 통해서 키보드 설정을 유지한 채로 사용했지만 지금은 마이그레이션이 안 되는 장비(아이패드 프로+키보드, 새로운 맥북 프로)가 생겨서 어쩔 수 없었다. 적응하느라 며칠은 고생할 것 같다

사랑스러운 우리 아들이 집의 맥북프로를 밟아서 액정이 나갔다. 덕분에 맥북프로를 한대 더 업어오게 되었다. 기존의 맥북은 데스크탑처럼 쓸 생각이다. MACOS 장비는 이제 집에만 네대다…

아들은 이제 유치원을 다닌다. 어느새 훌쩍 커서 우리와 감정을 공유한다. 그리고 말도 많아졌다.(잔머리도 늘었다.) 키와 생각이 자라는 만큼 내 아내의 고생도 자랐을 것이다. 그런 힘듬을 부여잡고 화가의 삶을 동시에 살아가는 것을 보면 참 멋있다.

추나라는 자세교정을 시작했다. 총체적 난국이라는데 좀 꾸준히 해볼 생각이다. 자세도 항상 신경 쓰려한다.

닥치고 웹 표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