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단어 무식자의 고통

요즘 대화를 하거나 글을 작성하는 데 있어서 영단어의 사용을 줄이고, 가능한 한국어를 사용하는 것을 연습 중에 있다. 

이런 시도를 하게 되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 나도 모르게 대화중에 사용하는 영어 단어의 수가 늘어나는데, 사실 사용하는 단어의 정확한 의도를 모르는 채 이야기하는 나를 발견했다.
  • 발표자료에 영어단어를 많이 사용해서 발표를 했더니, 오히려 나중에 검토해 봤을 때 그 내용이 부자연스러운 적이 많았다.
  • 반대로 다른 사람이 작성한 글 중에 영어단어를 많이 사용하는 글 치고 내용이 매끄럽게 이해되는 적이 별로 없었기도 했다.  

오늘 오전에 회사의 공지사항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발견했다. 

“(전략) 우선, AAA과 BBB에 대하여 간략히 summary 해드립니다.(후략)” 

어디서 퍼온거

summary는 보통 요약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개요라는 뜻도 있지만) 요약은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말이나 글의 요점을 잡아서 간추림.”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고, 이미 summary 앞에 간략히라는 언급이 있기 때문에 간추리는 말이 중복이 된다. 그렇다고 해서 내용을 앞뒤로 살펴볼 때 이해에 문제는 없겠지만, 굳이 영단어를 사용해야 하는 이유는 알 수 없다.

영어를 섞어서 말이나 글을 작성하는 사람들을 보면, 보통은 사용한 영단어가 한국어로 표현되기가 어렵거나, 이해가 더 잘되거나 이런 경우가 아니었다. 대부분은 쉽게 한국어로 치환이 가능한 내용들을 영단어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예가 있다. 

우리가 strategy를 drive 하는 데 있어서 High Performance를 내기 위한 action item을 찾고 그것을 잘 acting 할 수 있는 ownership을 저마다 가진다면 결국 그 strategy는 success 할 것입니다.

지어낸거

예시를 들기 위해 좀 과장한 측면이 많긴 하지만, 여기에 한국어로 표현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는지 모르겠다. 외국에서 오래 산사람이 이렇지 않을까 했는데 그런 경우는 별로 없었다. 오히려 외국에서 평생 산사람들은 가능하면 한국어만 사용하거나 그렇게 하려 노력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게다가 더 힘든 경우가 있었다. 

AA의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B와 컴 하셔야 합니다.

기억속의 저장소

정말 30분 넘게 고민했다… ‘컴이 뭐지??? 컴퓨터를 하라는 건가? 내가 쓰는 맥북도 컴퓨터이긴 한데… 그럼 내 아이폰도 컴퓨터 아닌가?’ 하고 머리를 쥐어짜 낸 적이 있었다. 알고 보니 comm 이 통신이라는 의미가 있긴 했었다. 더 들여다보니 커뮤니케이션을 줄여서 말하는 것 같았다. 확실하진 않다. 근데 어떤 회사에서 누군가로부터 퍼졌을 이 “컴하시면 됩니다”의 말은 우리 회사에서도 많이 사용되고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 “컴”대신 “커뮤니케이션”을 넣으면 말하는 사람의 의도가 보이기는 했다. 왜 줄였는지는 모르겠다. 요즘 인스타 용어처럼 쓰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그걸 이해 못하는 나는 꼰대를 벗어날 길이 안 보인다.

영단어를 쓰지 말자는 것이 아니라, 적재적소에 필요한만큼 적절하게 이해를 돕기위해 사용하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오히려 이해를 방해하는 요소가 많이 보인다. 매우 안타깝다. 나도 더욱 노력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