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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택근무

실제 재택 근무를 오래는 아니지만 일시적으로 진행한 적이 있었고, 비교적 자유로이 회사 업무를 진행할 수 있는 회사에서 경험을 해본적이 있었다.  그리고 현재는 제주라는 특별한 공간에서 살다보니 주변에서 디지털 노마드나 심지어 팀원들도 재택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았다.

위에 언급한 내가 언급한 회사는 기본적으로 재택을 지원할 수 밖에 없는 환경이긴 했다. 우선 전 세계에 직원들이 소재해 있기 때문에 근무 시간을 맞추거나 대면하여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에 대한 중요도가 떨어졌다. 또한 이곳은 내가 해야할 업무를 내가 계획해서 수행하고 그것이 가치 있음을 증명해내야 했다. 이것이 당연한 것 같지만 이것을 제대로 해내는 사람을 난 거의 본적이 없다.(나도 엄청 힘들었었다..)

재택근무는 얼핏보면 공간의 문제인 것 같지만 사실은 시간의 문제일 가능성이 크다. 한국에서 회사 생활을 하는것은 아침에 출근해서 일을 하다가 저녁에 퇴근 하는 것을 말하기 때문이다. 아침과 저녁 사이에 회사라는 공간에 있으면서 자연스럽게 나의 자유는 침해 되기 시작한다. 동료나 상사의  눈치도 봐야하기 때문이다.

가정을 해보자… 한사람은 9시 30분으로 정해져 있는 출근시간에 10시30분 즘 출근을 하여 퇴근까지 쉬지않고 일했다. 다른 한사람은 정시에 출근하여 동료들과 티타임을 1시간 정도 진행을 했다. 업무량은 비슷하고 성과도 비슷하다고 하면… 이것에 대해 문제삼지 않아야 정상이 아닐까? 근데 현실에서 보면 그래도 근태는 지키는것이 좋아.. 그건 기본이지 라고 말하는 것을 보게 된다. 아직 한국의 회사는 근(무)태(도)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본다. 이런 환경에서 재택이 자리잡기는 쉽지않다.

주변에서 재택을 경험해본 사람들의 이야기를 여러경로로 들어보면 대부분 입장이 비슷하다. 업무 진행이 들쭉날쭉 하다고 불평이다. 그래서 일이 없을때는 개인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좋은데, 업무가 많을때는 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아서 힘들다고 한다. 이런 사람은 생각이 단순해서 부럽다. 시간으로 일을 하는 경우가 아직 몸에 배어있기 때문이다. 내가 재택을 할 수 있을까? 라는 고민을 한다면 다음의 경우를 생각해보면 될 것 같다. 회사에서 근무할때 시간 컨트롤이 안되는 경우(예를들면 야근을 한다던가 또는 일이 너무 없어서 자유시간이 많이 생긴다던가)가 많이 발생한다면 재택에 실패할 확률이 높을 것이다.

– 일이 많으면 힘들어서 실패일것이고 일이 없으면 상사가 나를 쳐낼테니까.

시간으로 계속 이야기를 하면 힘들다. 업무의 프레임을 시간이 아닌 가치로 가져와야 난 재택이 좀 더 실현가능성이 있다고 보는주의다.

이게 난 중요하다고 보는데, 회사에서 월급을 받기 위해 자발적으로 가치를 만들어내어 계획을 수립하고 수행해서 그가치를 증명하는사람을 난 거의 본적이 없다. 내가 맡은 일(과제)을 그냥 처리하는것이 대부분이며, 그래도 좀 더 능동적이라면 무엇을 더 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정도가 대부분이었다.

업무의 가치를 시간에서 업무 자체로 변화시킬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2020 달력 판매

작년에
“이런것도 장터에 올려도 되는지 조금은 걱정했는데요. 이번에 제 아내가 제주에서”
라는말로 달력과 엽서를 판매 했습니다.
시간이 1년이나 흘러 2020년 달력을 판매하게 되었습니다.
이번에도 이런걸 장터에 올려도 되는지 다시 고민했지만, 아내의 행복이 저의 행복이기때문에 염치를 무릅쓰고 글을 올립니다. (달력 제작에 제 돈을 부어서… 가 절대 아닙니다.)

달력은 탁상달력의 형태이구요 w: 23cm * h: 10cm 이고 원목 받침대에 13장을 꼽아서 사용하는 상품입니다.

작가님의 소개글을 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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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달력이 나왔습니다
올해는 미뤄왔던 천연염색 작업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조금 더 자연의 색에 다가선 것 같고 또 아크릴과의 접목도 서서히 자리잡히는 것 같습니다. 내년도 달력으로 선보이는 작품들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의 초기작으로 해석하면 좋을 것 같고, 한달 한달 꾸밈없이 작업하였습니다.육지든 제주든, 또다른 나라의 하늘아래에서도 ‘그래, 그날은 풍경이 이랬지. 이런 색깔이었지!’ 하고 보아주시면 좋겠습니다.

달력은 작년에 만든 방식 그대로 나무받침에 끼워두는 형태입니다. 다만 작년에 구매한 분들은 나무받침을 또 안사셔도 되게끔 제거한 버전을 만들었습니다.

https://www.instagram.com/p/B4Zn1flgKfN/

2020 달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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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침있는 달력 22,000원/ 받침없는 달력 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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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외출

아내가 톡으로 이번 주 토요일에 친구들 만나러 저녁에 나가도 되냐고 물었다.

질문 또는 허락을 구하는 형태인게 너무 슬프고 미안했다. “허락받을일 아니라고 말했다.”

팀 떠나기

“올해 나의 업무 영역이 특정 서비스에 한정된 조직을 관리하는 것으로 변경이 되면서, 내 업무 방식이 바뀌었다.
기존에는 난 여러 개의 조직이 묶여있는 부문의 전반적인 방향 설계와 큰 이슈에 대해 방향 설정을 하고, 막상 내가 속해있는 팀은 각자 구성원이 업무를 알아서 하고, 문제가 생기는 경우 해결을 하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내 동료들의 일을 좀 더 정확히 상황과 방향에 대해 알고 있어야 하고, 같이 일하는 다른 팀의 분들과 좀 더 많이 이야기를 많이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게다가 내가 직접적으로 관리해야 하는 조직의 구성원이 2배가 넘게 늘어버렸다.(채용목표까지 모두 합치면 기존의 세배의 조직이 된다.) 당연히 일이 많아질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그래도 즐거움이 있었고, 눈 앞에 보이는 것을 처리하고, 그에 대한 만족감을 나타내는 대상들을 볼 수 있어서 보람되고 즐거운 나날들이었다. 힘들지만 힘들지 않았다. 그런데 조직에서는 더 큰 그림을 볼 필요가 있다고 하며 다른 업무를 부여했다. 내가 그것을 끝까지 반대했으면 안 할 수도 있었겠지만 난 그러지 못했다. 이 회사에 나를 필요로 하는 조직이 하나의 조직만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도 안 되는 자만과 잘난 척이 넘치는 인간이었나 보다.”

2018년 9월 12일에 글 감으로 남긴 글이었다.

그후 1년 동안 또다시 조직을 세 개 맡아서 정신없는 나날들을 보냈다. 많이 신뢰하는 친구의 조언 중에 “겸직을 하더라도 직책의 높낮이를 바꿔가며(팀장도 하고 실장도 하는) 겸직은 하지 않는 것이 좋아”라는 말도 무시해가며 생각을 무한으로 바꿔가며 여러 사람의 역할을 하려고 노력했다.

결론은 처참했다. 원래 나의 정신적인 주춧돌이 되는 조직은 내가 잘 모르는 조직으로 변하고 있었고, 다른 조직에도 집중을 하지 못해서 1프로도 나아진 게 있는지 모를 정도였다. 매일 같이 일찍 출근을 해도 밀려드는 업무를 감당할 수 없었고 자연히 가족에게도 소홀해졌다. 아내는 왜 맨날 일찍 출근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불평을 했지만 그냥 “일이 많아서 그래” 라면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어느 날 밀린 상반기 구성원의 업무 성과 평가를 하는데 50명이 넘는 사람을 대상으로 상세 평가를 해야 하는 입장에서 ‘난 어찌하면 이걸 빨리 대충 처리할 수 있을까? 바쁜데 평가를 왜 해야 하는 거지?’라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이 드는 순간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내 능력을 과신해서 사람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많이 늦었다. 빨리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를 옮기지는 않기로 했다. 이 회사는 나에게 너무 많은 것을 가져다주었으며, 앞으로도 많은 것을 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다만 나 자신을 과신하지 말자고 생각했다.

결심을 하고 나랑 제일 함께 오래 한 팀의 선임들에게 이야기를 했다. 팀을 떠나야겠다고, 차마 그동안 미안했다고는 하지 못했다. 지금까지 버틴 것도 그분들 때문이었다. 매번 나의 말에 한 숨 쉬면서 못난 나를 도와주던 사람들이었다. 내 고집이 더 잘될 수 있는 사람들을 막았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난 그렇게 6년을 넘게 함께한 팀을 떠나기로 했다.

써놓고 보니 거창했다. 열심히 살자

어떤 날

시작은 좋았다.
전 주의 힘든 출장에 여독이 풀리지 않았던 남편과 그리고 남편의 출장 덕에 육아를 혼자 책임져야 했던 아내의 고된 삶을 위로하려고 우리는 월요일 오전에 휴가를 내었다.

두 손을 꼭 잡고 걷는 부부에 대한 주변 분들의 질투도, 모든 것을 시원하게 때려 부수고 타노스도 싸대기 날릴 것 같은 캐럴의 시원한 펀치와, 후련한 막국수가 우리의 힘듦을 해결하는데 부족했지만, 그래도 위로가 되는 반나절이었다.

반차 후 출근해서 본 다음 포털에서는 사람을 그렇게 죽여대고도 뻔뻔하게 살아있는 쓰레기의 뉴스가 도배되어 있었고, 수많은 업무는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나를 반기고 있었어서… 행복함을 잃는데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지는 않았다.

다시 현실로 돌아와 무기력하게 일하는 중에 아내에게 연락이 왔다. 아이가 다쳤다고 했다. 난 정신없이 병원으로 달려갔고, 병원의 대기실에는 아픔과 피곤함에 잠들어있는 아이와 아이를 다치게 했다는 죄책감에 계속 울고 있는 나의 아내가 있었다. 나부터 정신 차리고 최선의 의료를 찾았다. 하지만 여기는 의료서비스가 충분하지는 않았다.

상처를 잘 치료하고 흉터가 남지 않기 위해 성형외과+응급실을 찾는 노력은 서로 미루는 제주의 병원 현실을 알게 하기에 충분했고, 돈이 되지 않는 복원 성형을 하지 않는 “제주에서 강남처럼”을 외치는 수많은 성형외과의 이런저런 핑계만 들었다. 결국 한 종합병원에서 우리는 응급처치를 하기로 했고, 아픈 애를 더 아프게 했다. 그래도 치료는 잘 받았다.

펑펑우는 아이와 아내를 끌고 집에온 우리는 밤 11시가 돼서야 우리는 저녁을 먹지 않았다는 것이 생각났다. 그래서 나는 김밥이라도 사려고 다시 차를 몰고 돌아다녔는데… 그 조차도 없었다. 그 사이 아내는 피로에 쓰러져 잠들어버렸고, 난 집 앞 자매국수에 가서 국수에 소주를 한 병 먹었다. 모라도 해야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국수와 소주잔 앞의 TV에는 쓰레기 같은 학살자의 모습이 반복해서 나올 뿐이었다.
집에 들어가서 아들과 아내를 한번은 꼭 보고 좋은 마무리를 해야겠다. 오늘의 마무리를 잘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