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보관물: Life story

기억난 어느 술집

넥슨에서 근무 하고 있을때 였다. 어느때와 같이 월매네 주막(선릉역 근처에 있는 허름한 컨셉의 주막 이었다.)에 모였고 안내 받은 별실에서 팀의 형들과 고추장 찌개와 모듬전을  두고 놀고 있었다.  그 별실에는 우리 말고도 다른 무리가 있었다. 한정된 공간에서 서로 다른 무리가 술을 먹게 되면 목소리의 톤이 올라가기 마련이다. 그러다 우리가 좀 많이 시끄러웠는지 다른 무리의 한 사람이 시끄럽다고 이야기 했다. “저기 좀 조용히 해주시면 안되나요? 여기 노의원님도 계시는데… 그러지 말고 같이 이야기를 나누는건 어떠신가요?”

청년들을 만나서 자신의 정치 신념을 이야기하고 반대로 이야기를 듣는 자리 였던 것 같은데…  우리는 좀 짜증이 났다. 그러지말고 같이 이야기 하자니, 그리고 우리가 톤을 낮출 수는 있어도 조곤 조곤 이야기를 하는 술집은 아니었다. 그럴꺼면 스터디 까페를 가셨어야지.  노의원이라면 서민 정치의 상징 같은 사람인데… 술집 그리고 주막에서 소란 스럽다고 뭐라 할리가 없을텐데.. (우리가 좀 시끄럽기는 했지만 분명히 걸그룹 가지고 그랬을꺼야..), 우리는 놀던 기분이 상해서 그냥 좀 끄적이다가 나왔다. 물론 다른곳에 가서 또 신나게 놀긴 했지만

나에게 그분은 그런 이미지였다. 서민을 위하지만 권위의식이 없지는 않은? 그런데 생각해보니 그 당시의 그 분은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주변이 호들갑이었던 것 같다. (뭐라하기도 애매 했을 것 같다.) 뭐 그렇다해서 그 시절 그 술집으로 돌아간다해도 갑자기 우리가 그 분과 이야기를 나누지는 않았을 것 같지만.. (말 이쁘게 하던 그 옆의 청년 때문에)

그래도 싫어하는 정치인에 속하지는 않았었고 좋아하는 정치인의 측에 속했던 사람이었는데, 안타까운 소식을 들었다. 그 날 대화를 많이 하지 않더라도 막걸리라도 한잔 드리고 응원합니다. 라는 말을 하지 못했던 나의 소심함이 부끄럽다. 나도 서민이고 서민을 위해 일했던 몇 안되는 정치인 이었는데 말이다.

봉하마을에 조만간 가야겠다.

어떤 월드컵

어제는 원래 9시 30분쯤 잠드는 아들 때문에 회사 동료 들과 축구를 볼 예정이었다. 그런데 아들이 열이 나서 힘들었고, 생각해보니 오늘 같은 날 치킨집에 우르르 가서 자리 잡고 기다리기도 힘들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결국 집에서 보기로 했고, 집에 도착한 시간은 7시, 아들은 열이 나서 인지, 일찍 잠들었다. 자 축구 볼 준비를 하자. 우선 치킨을 시켜야 한다. 치킨집에 전화를 하자 A치킨집 통화 중, B치킨집 통화 중 C, D… 모두 통화 중이다. 집에 냉동 조리 치킨이 있지만 에어프라이어는 없다. 오븐에 구울까 했는데, 아내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맛이 없단다.그럼 답이 없다. 우리 집 전방 500M 안에 치킨집이 총 5개다. 교 X, 썬 X, X 직한, 사이 통닭(여기는 로컬 맛집이니까 ㅋㅋ), 귀에 이어폰을 끼고 결연한 눈빛으로, 아내에게 치킨을 구해오겠다고 했다.

“내 축구경기가 시작하기전에 반드시 치킨을 구해오리다…”

빗속을 막 피하며, 처음 집으로 갔다.(제주는 장마다)
배달은 2시간 포장은 1시간 30분 걸린단다. 지금 시간 7시 40분인데.. 안 되겠다고 판단했다. 두 번째 집은 2시간 세 번째 집은 주문 안 받는단다. 역시 우리나라는 치킨 집을 해야 한다. 네 번째 집은 30분인데 내가 마지막 손님이란다. 웃으면 말씀해주시는 치킨집 사장님한테 반할뻔했다. 아싸!!

아내는 기다리는 동안 아들을 위한 설렁탕을 사 오라고 했다.설렁탕을 사 오고 잼 라이브를 하면서 치킨을 기다렸다. 잼 라이브 꼭 12문제 중에 2문제는 모른다. 요즘 찍기는 왜 이렇게 안되는지 모르겠다. 암튼 약속의 30분이 지나고, 치킨과 설렁탕과 맥주를 사들고 집에 가서 생각해보니 집 주위 500M지만 각 치킨과 설렁탕 간의 거리는 더 멀다는 걸 난 오늘 운동을 했다는 걸 깨달았다. 갑자기 더웠다. 샤워를 하고 자리에 앉으니 경기가 시작했다.

요즘 축구를 관상으로 보는 아내에게 물었다.(꽤 정확하다)
“여보 스웨덴에 축구 잘하게 생긴 사람 있어?”
“아니 저번보다는 좀 별론데?”(저번에는 아이슬란드와 아르헨티나 경기를 봤다)
“아 그럼 난전인가?”

그 말이 맞았다. 조용히 경기를 보던 아내가 말했다.
“지루하다…”
그랬다 경기는 지루했다. 특히 골키퍼가 돋보이는 경기는 그냥 망한거다.
오늘 대한민국 골키퍼는 꽤 잘하드라

다행히 치킨은 맛있었다. 여보는 주로 양념을 난 주로 후라이드를 먹는다. 물론 내가 더 먹지만, 갑자기 여보가 양념 한 조각을 남기고 더는 못 먹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난 말했다.
“아직 포기하긴 일러… 우리도 끝까지 최선을 다 해야지..”
여보는 마지막 한 조각을 힘차게 먹었다. 그즈음 손흥민이 열심히 달렸는데 중앙에는 아무도 없었다.
결국 맥주를 한 캔 마신 여보는 후반을 들어서자 급격히 페이스가 떨어지며 힘들어했다. 그리고 축구경기에서 가장 힘든 시간 후반 30분 즈음 잠을 청하러 방에 들어갔다.

난 그래도 마지막까지 축구를 다 봤다.

이번 경기의 요약은 그냥… 경기 기록이 대신해 준다고 본다. 심판을 욕할 것도, 선수, 감독을 욕할 것도 없다. 유효슈팅 0, 총 슈팅 1/3, 다른 부분도 근소한 차이 지만 모든 면에서 스웨덴에 뒤졌다.

예전에 스웨덴 친구한테 2010년즘 대한민국 축구를 자랑한적이 있었다. 스웨덴 친구가 박지성 잘한다고 그래서 나는 뽐내며
“박지성 잘하지!! 스웨덴에는 누가 잘해?”
라고 물어보자 그 친구는 수줍게 이야기 했다.
“이브라모비치 정도???”아… 그 스웨덴이지…

오늘 느낀점은 이거다. 다음 경기는 치킨 안먹고 한치나 먹어야겠다.

아침주스

요즘 회사일이 너무 많아, 야근 대신 선택한 것이 일찍 출근하는 것인데(그래도 야근을 종종하게 된다.) 아침 6시 30분에 일어나 7시 15분에 집을 나서게 된다. 요즘 아내는 육아와 예술 활동에 피곤할 텐데, 꼭 새벽에 일어나 사과, 당근, 파인애플 등을 갈아서 아침 대용으로 마실 수 있게 해준다. (얼마 전에는 회사 가면서 먹을 수 있게 플라스틱 컵과 빨대도 준비해 두었다.)

아침에 과일과 야채를 씻어서, 썰어서, 곤히 자고 있는 아들이 깰까 봐 내방까지 믹서기를 들고 와서 최대한 살살 갈아서 나에게 건네준다.

당근 사과 주스

덕분에 즐겁게 출근한다.

접근성에서 오류발생 횟수에 따른 신뢰도 하락의 증가폭

접근성에서 오류 발생 횟수에 따른 신뢰도 하락의 증가폭의 주제로 논문을 발표했다.

처음 오류가 발생할 때는 신뢰도의 하락이 크지 않았으나 오류가 발생될수록 하락폭이 커지는 문제였고 지금 현재의 모수 대비 오류 개수로 측정하는 평가방식의 문제점을 보완할 수 있었다.

각 평가항목의 중요도를 외국의 level이 아닌 국내의 상황에 맞는 기준으로 만드는 작업을 하던 도중 기존의 평가업체에서 지금의 좋은 흐름을 방해하지 말라며 날라차기가 내입으로 들어왔다.

정신을 차려보니 내 얼굴에 아들의 발이 있었고 난 7시 출근 셔틀을 놓쳤다.

연휴 끝

(진짜 만들어 볼까…)

5년

지금의 회사를 다닌 지 만으로 5년이 지났다.

5년 전과는 다르게 내 말을 항상 믿어주는 내 아내가 있다. 그리고 벌써부터 자유로운 영혼이 넘치게 느껴지는 아들이 있다. 아침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고 집을 나서기 전에 잠시 숙면을 취하고 있는 둘을 보고 나선다. 그 공간의 공기마저 포근하고 나도 저 안에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만, 저 행복한 잠자리를 위해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책임감이 생긴다. 물론 이런 생각은 오래가지 않고. 회사만 도착하면 피곤이 몰려온다.

회사에서는 (물론 그들이 실제로 나를 어찌 볼지는 모르겠지만) 내 이야기를 존중해주는 나의 보스와 나의 팀 동료들이 있다. 힘든 시기에 입으로는 상황을 욕하면서도 서로 도와서 힘든 시기를 이겨내려는 팀 동료들을 보면 많이 고맙다. 내 능력에는 한계가 있는데, 조직의 규모가 계속 늘어나서 내 역할을 잘하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그리고 내 개인적인 욕심으로 회사에서의 역할을 충분히 다 하지 못 하는 것 같아 내 보스에게 죄송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더 열심히 해야 한다.

5년 전에 내가 내려온 제주와 지금의 제주는 많이 다르다. 단적으로 교통정체가 생겼다. 그래도 조금만 나가면 바다가 있고, 산이 있고, 마음의 안식을 줄 수 있는 여러 가지 장소가 있어서 지루 할 틈은 없다. 특히 제주는 매주 색이 변한다. 봄만 하더래도, 유채꽃이 노랗게 깔리다가, 바로 벚꽃이 세상을 분홍빛으로 물들이고 좀 아래서는 동백꽃이 힘차게 버틴다. 그럼 바로 수국이 포인트로 깔리며 온 세상이 푸르게 변한다. 매일 컴퓨터 앞에서 여가를 보내던 안경 뚱땡이가 이 정도까지 변할 수 있게 해 준 공간을 싫어할 수는 없지 않은가? 솔직히 공간보다는 아내의 역할이 크지만…

얼마나 이 제주에서, 이 회사에서 더 있어야 할지 모르겠다. 가끔 서울에 가면 여러 지인들이 이제는 올라올 때가 된 것이 아니냐고 하지만, 난 아직 그럴 생각이 없다. 회사일도 할만하고 제주가 지겹지 않다. 무엇보다 내 가족이 제주라는 공간에서 행복해한다.

다음글은 40이다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