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의 목표

작년에 꼰대가 된 것 같다는 글을 썼다.

올해 목표는 술먹고 발끈하지 않는 것 이다. 진중하게 사는것이다.

작년까지는 말할까 말까 고민이 되는일은 말을 하는편이었는데, 올해는 고민되는 말은 안하기로 하자.

두돌

태어난 기쁨과 무사히 자라준 첫 돌의 기쁨이 엊그제 같았는데 두돌이 바로 다가왔다. 첫 돌은 돌 자체에 의미가 있었다면, 이번은 크리스마스와 연계된 것에 의미가 있었다(아들의 생일이 12월24일이다.). 사랑하는 나의 아내 초희는 벽에 램프로 트리를 만들고 그 밑에 선물 상자를 여러개 만들었고, 난 그 트리의 끝에 별 장식을 구매해서 달았다.

정우가 생일날 아침에 일어나서 아빠를 찾을 즈음 나와 아내는 선물을 짜잔 보여주고 미리 준비한 선물과 케익 그리고 생일상을 함께 했다. 생일 축하 노래를 다 부른후에야 촛불을 후하고 불수있게 잘 자라준 정우는 촛불끄는놀이가 신기하고 재미있었던지 계쏙 촛불을 끄겠다고 했다.(집안에 촛불연기가 가득했고 우리는 생일노래만 10번은 불렀나보다.)

이제 미운 네살로 들어서는 아들과의 대화는 점점 과격해지지만, 우리가족의 사랑도 점점 더 커지는 느낌이다.

나의 2017

블로그

우선 2017년 한 해는 무조건 글을 많이 써보는 것을 목표로 삼았었다. 이 블로그를 운영을 시작한것이 2006년 부터 였는데, 11년간 277개의 글을 썼다. 한해에 평균 25개 정도 쓴것이 되는데…(그마저도 2016년에는 12개 2015년은 4개였다…) 올해는 39개의 글을 쓰게 되었다. 주제도 웹 표준 보다는 다양한 주제로 쓰기 시작했는데, 다행히 방문자수가 좀 늘어나는 것 같아 다행이다.(그래야 얼마 안되지만)

내년에는 좀 더 많이 글을 쓰고자 한다. 내 생각을 정리하고, 나의 일상을 어딘가에 남겨 두는 것이 내가 살아가는 방향에 도움이 될것을 믿기 때문이다.

직장

내가 속한 조직의 목표가 변경되었다. 더 좋은 방향으로 가기 위한 여러가지 시도와 판단으로 누군가 결정하여 내려주었다. 큰 결정을 과감하게 바로 실행하는 능력에 감탄이 나올뿐이다. 다만 멀리나는 새는 멀리 보고 크게 보지만 숲을 구성하는 하나 하나의 구성물들이 어떻게 유기적으로 움직이는지 알지 못한다. 2017년에는 멀리 크게 보는 사람에게 디테일을 잘 설명하지 못한 책임이 큰 한해였다. 디테일을 잘 전달 하는 것도 내가  쉽게 가질 수 있는 능력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또한 난 능력 상 멀리 크게 보다는 내 주변의 가까운 것만 챙기는 것도 벅차다. 2018년에는 내가 모시는 팀의 구성원들이 좀 더 편하게  업무를 볼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에만 신경을 쓸참이다.

가족

내 아내의 헌신으로 인해 정우가 잘 자라주고 있다. 육아를 함께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더 잘할려고 노력하지만, 현실은 내가 느낄 정도로 육아에 ‘도움이 되는 수준’ 정도로 언제나 머물러있다. 이 부분이 가장 안타깝다.

그래도 자신의 꿈을 쫓아 열심히 그림을 그린 우리 “작가 김초희”에게 너무 고맙다. KPI달성은 물론 초과 목표까지 수행했으니 약속대로 괌 여행을 가야하는데… 내가 가능한 시기가 되었을때 꼭 갔으면 좋겠다. 집안일이나 육아가 자신의 꿈을 내려놓게 되는 결과가 되어서는 안될텐데… 내가 더 노력해야 한다.

홍정우는 대화라는 것을 일부 나마 할 수 있게 되었다. 어제는 “아빠 재워줘”했더니 내 볼을 쓰다 듬으며 “아빠! 자장자장”을 우렁차게 외치고 가는 정도가 되었다. 누군가의 폭풍 성장을 바로 옆에서 경험할 수 있는 것은 어디서도 얻을수없는 큰 경험이다. 빨리 어린이 집을 가고 잘 적응을 해서 내 아내가 육아에서 조금은 부담을 덜었으면 좋겠다.

그래도 매년 그래왔지만 열심히 살았고, 새로 다가오는 새해도 열심히 살것같다. 다만 이제는 좀 앞날에 대한 대비를 하면서 살아야되는데, 아직 그부분에 있어서는 확신이 없다. 그래도 10년전 서른이 되었을때와 비교해서 모든것이 성장하고 안정되어 있으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항상 새해 인사는 이렇게 한다.

“내가 알았던, 알고있는, 알게될 모든 사람이 행복한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중에 제가 제일 행복해야 합니다.”

마크업 가이드

회사 이야기는 잘 안 하는 편인데, 이번에 조직을 변경하여 카카오에서 만드는 서비스의 사용자단에서 보여지는 산출물(HTML, CSS)을 만드는 조직의 리더를 그만두게 되었다. 이제 다른 업무를 하게 될 예정인데, 4년 넘게 몸담은 조직이라, 그동안 내가 해온 일들을 인수인계를 하기 위한 용도로 문서 작성을 하고 있다. 4년간 해온 일들을 정리할 수 있어서 나에게도 의미 있는 시간들이었는데…

내가 입사했을 당시에는 마크업 가이드가 존재했다.(지금도 존재한다) 접두어, 접미어, 예약 어등의 네이밍부터 중첩 허용범위 등 상당히 엄격하게 정의되어 있었고, 코드리뷰 시스템을 통해서 상당히 안정적으로 결과물을 배포하고 있었다. 그 당시 나의 상위 리더는 우리 구성원들이 경험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우선 답을 알려 주는 것이 필요했다고, 몇 년이 지나면 가이드에서 벗어나서 좀 더 창의적으로 업무를 할 수 있게 되면 좋겠다고… 이야기 했다.

난 쉽게 납득이 가지 않았다. ‘가이드만 지키면 되는데 창의적인 생각을 뭐하러?’

그리고 다시 가이드를 봤다. 이건 안내서(guide)가 아니라 규칙(regulation)이었다. 난 리더의 말을 실현하기 위해 규칙이라고 되어있는 부분을 최소화하기로 했다. 필수로 지켜야 하는 항목과, 적용을 선택할 수 있는 부분 그리고 예전에 필수였지만 지금은 참고만 하는 항목으로 분리했다. 그리고 필수로 지켜야 하는 항목에는 반드시 그 근거를 넣도록 했다. 이제 규제는 최소화하고 창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줬다고 생각했다.

예전의 가이드 시절부터 업무를 배운 친구들은 가이드가 빈약하다고 투덜 댄다. 최근에 입사한 친구들은 뭐 이렇게 지킬게 많냐고 투덜댄다.

난 무엇을 한 걸까… 그래도 나아지고 있겠지…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와 ‘감사합니다’의 차이는 무엇일까 항상 의문이 들었다.

처음에는 ‘감사합니다’가 더 정중해 보였다. 그런데 쓰면 쓸수록 ‘고맙습니다’가 더 따듯한 느낌이었다. 그래서 고맙습니다를 더 많이 사용 했는데 특히 공식적인 메일 또는 직책이 많이 높으신 분에게 사용할때 마음이 불편했다.

결국 찾아봤다. 국립국어원의 질문게시판에 나랑 비슷한 생각의 질문과 답변이 있었다.

문의하신 ‘감사합니다.’와 ‘고맙습니다.’는 그 뜻에서 별 차이가 없습니다. 다만 <표준국어대사전>에서 그 의미를 살펴보면, ‘고맙다’는 ‘남이 베풀어 준 호의나 도움 따위에 대하여 마음이 흐뭇하고 즐겁다.’라는 의미가, ‘감사하다’는 고마움을 나타내는 인사로 ‘고마운 마음이 있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요즘은 ‘감사하다’가 ‘고맙다’보다 격식을 갖춘 말이라고 여기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올바르지 않습니다. ‘감사합니다.’와 ‘고맙습니다.’ 모두 쓸 수 있습니다. 다만 ‘고맙습니다.’라는 표현을 권하는 것은 가능하면 고유어를 쓰라는 뜻에서입니다.
참고로 ‘감사(感謝)’는 중국어에서도 쓰이고 있고, 비록 17세기의 원본이 전하지는 않지만 우암 송시열 선생의 ‘계녀서’에도 등장하므로 일본에서 만들어진 말이라는 것은 좀 더 확인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감사’는 이미 우리말에서 확고한 위치를 가지고 널리 사용되고 있으므로 우리말로 간주하여도 별다른 문제가 없다고 봅니다.

‘고맙습니다’를 사용해도 될 것 같다.

찾다보니 맘에 드는 기사를 더 발견했다. 특히 마지막의 내용이 맘에 와 닿았다.

요즘 젊은이들이 예전처럼 새로운 말을 한자로만 만들어야 한다는 편견에 구애받지 않고, ‘밀당’처럼 일단 낱말을 막 만드는 것은 좋은 현상이다. 이 과정에서 좋은 말은 살아남을 테고, 설득력이 없는 말은 생명력을 얻지 못한 채 사라질 것이다. 기성세대는 용기가 없었기 때문에 새로운 말을 많이 만들어내지 못하고 한자나 영어를 써 버렸다. 그런 면에서 기성세대는 오히려 창조적이지 못했다.

언어는 살아 숨쉬는 것 같다

닥치고 웹 표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