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Archives: childcare story

아들일기 33개월

말을 어느 정도 할 줄 알고 자기표현을 하게 되는 아들은 점점 미운 네 살로 진입하게 된다. 어떤 행동을 하자고 하면 일단 “아니야”부터 나온다. 놀러 가게 옷을 입자고 해도, 밥을 먹자고 해도, 놀던 장난감을 치우자고 해도, 좋은 거 나쁜 거 상관없이 일단 다 싫다고 한다.

처음에야 몇 번 말로 타이르지만, 성격 급한 엄마, 아빠는 이내 폭발하고 엄마는 소리 지르고 난 맴매(효과 1도 없다)도 시도해 보았다. 그래도 별 효과는 없어 보여서 칭찬 카드를 만들어서 10번 착한 일을 하면 좋아하는 간식을 주기로 했다. 밥을 잘 먹고, 치카를 잘하고, 우리들의 말을 잘 들을 때마다 별을 하나씩 붙여주기로 했다. 내가 폭발하는 모습을 보고 아무래도 아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겠다고 판단해서 이런 회유책을 만들었다고 했다. 내 아내는 훌륭하다.

어제저녁에는 오랜만에 집에서 고기를 구워서 저녁에 가족끼리 잘 먹었다.(스티커 하나) 치카도 잘했다(스티커 하나) 간식을 먹으려면 10개를 모아야 한다.

저녁에 모두 잠자리에 들어서 아들의 광기를 어찌 풀 수 있을까 와 오늘 공원에 놀러 가서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아들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

“엄마! 나 너무 더워… 더우니까 스티커 붙여야겠다. 그지?”

한 마디에 우리는 빵 터졌고, 안 좋았던 기분이 모두 풀렸다. 물론 스티커는 붙여주지 않았다.

2018년 9월 1일의 아들일기

이날은 토요일이었고 아내의 언니(처형)가 서울로 이사를 간 기념으로 아들을 두고 처형네 집으로 서울 구경을 가는 날이었다.
 
아들은 가끔 엄마를 보고 싶다고는 했지만 매우 신나게 놀았다. 낮부터 너무 놀아 낮잠을 자고 저녁도 집에서 잘 먹었다
 
그리고 집 앞 마트에 걸어가서 잘 놀고 간식 등을 사들고 걸어오는 길이었다.
 
아직 만 3세가 되지 않은 아이가 걷기에는 힘든길 이었을 것이다. 아들은 아빠 손을 잡고 걷다가 가끔 멈춰서 나를 올려다보고 내 손을 보곤 했다. 내 한 손은 아들의 손을 잡고 있었고, 나머지 한 손과 어깨는 짐들이 걸려있었다. 아들은 뭔가를 바라는 듯했으나 이내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러다 다시 나를 훑어보기를 반복… 그래서 아들에게 물었다.
 
아빠 : “아들 걷는 거 힘들어? 아빠가 안아줄까?”
아들 : “힘드어 힘드어”
 
울먹하는 아들을 번쩍 안아서 걸으면서 이야기했다.
 
아빠: “아빠가 짐이 많아서 안아달라고 못했어?”
아들: “네…”
아빠: “그래도 꾹 참고 집 근처까지 잘 왔으니까 여기부터는 아빠가 안아줄게~ 집에 가서 간식 맛있게 먹을까?”
아들: “네!!!”
 
항상 남을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는데, 그 가능성을 본 것 같아서 매우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어느새 이렇게 쑥 자랐을까 싶었고…
 
여기까지는 약간 짠하고 좋았는데… 간식인 과자를 온 거실에 흩날리면서 먹은 건 함정이다…

덧붙이는이야기

아내는 서울에 가서 두 가지를 느꼈나 보다 그 두 가지만 이야기했다.
아내: “강남에 갔는데 물감이 너무 많아!!! 흰색이 여러 종류야!!”
아내: “지하철 버스 너무 복잡해 서울에서 못살겠어!!!
남편: “응 걱정 하지마돈 없어서 어차피 서울에 못살아…”

두돌

태어난 기쁨과 무사히 자라준 첫 돌의 기쁨이 엊그제 같았는데 두돌이 바로 다가왔다. 첫 돌은 돌 자체에 의미가 있었다면, 이번은 크리스마스와 연계된 것에 의미가 있었다(아들의 생일이 12월24일이다.). 사랑하는 나의 아내 초희는 벽에 램프로 트리를 만들고 그 밑에 선물 상자를 여러개 만들었고, 난 그 트리의 끝에 별 장식을 구매해서 달았다.

정우가 생일날 아침에 일어나서 아빠를 찾을 즈음 나와 아내는 선물을 짜잔 보여주고 미리 준비한 선물과 케익 그리고 생일상을 함께 했다. 생일 축하 노래를 다 부른후에야 촛불을 후하고 불수있게 잘 자라준 정우는 촛불끄는놀이가 신기하고 재미있었던지 계쏙 촛불을 끄겠다고 했다.(집안에 촛불연기가 가득했고 우리는 생일노래만 10번은 불렀나보다.)

이제 미운 네살로 들어서는 아들과의 대화는 점점 과격해지지만, 우리가족의 사랑도 점점 더 커지는 느낌이다.

나의 2017

블로그

우선 2017년 한 해는 무조건 글을 많이 써보는 것을 목표로 삼았었다. 이 블로그를 운영을 시작한것이 2006년 부터 였는데, 11년간 277개의 글을 썼다. 한해에 평균 25개 정도 쓴것이 되는데…(그마저도 2016년에는 12개 2015년은 4개였다…) 올해는 39개의 글을 쓰게 되었다. 주제도 웹 표준 보다는 다양한 주제로 쓰기 시작했는데, 다행히 방문자수가 좀 늘어나는 것 같아 다행이다.(그래야 얼마 안되지만)

내년에는 좀 더 많이 글을 쓰고자 한다. 내 생각을 정리하고, 나의 일상을 어딘가에 남겨 두는 것이 내가 살아가는 방향에 도움이 될것을 믿기 때문이다.

직장

내가 속한 조직의 목표가 변경되었다. 더 좋은 방향으로 가기 위한 여러가지 시도와 판단으로 누군가 결정하여 내려주었다. 큰 결정을 과감하게 바로 실행하는 능력에 감탄이 나올뿐이다. 다만 멀리나는 새는 멀리 보고 크게 보지만 숲을 구성하는 하나 하나의 구성물들이 어떻게 유기적으로 움직이는지 알지 못한다. 2017년에는 멀리 크게 보는 사람에게 디테일을 잘 설명하지 못한 책임이 큰 한해였다. 디테일을 잘 전달 하는 것도 내가  쉽게 가질 수 있는 능력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또한 난 능력 상 멀리 크게 보다는 내 주변의 가까운 것만 챙기는 것도 벅차다. 2018년에는 내가 모시는 팀의 구성원들이 좀 더 편하게  업무를 볼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에만 신경을 쓸참이다.

가족

내 아내의 헌신으로 인해 정우가 잘 자라주고 있다. 육아를 함께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더 잘할려고 노력하지만, 현실은 내가 느낄 정도로 육아에 ‘도움이 되는 수준’ 정도로 언제나 머물러있다. 이 부분이 가장 안타깝다.

그래도 자신의 꿈을 쫓아 열심히 그림을 그린 우리 “작가 김초희”에게 너무 고맙다. KPI달성은 물론 초과 목표까지 수행했으니 약속대로 괌 여행을 가야하는데… 내가 가능한 시기가 되었을때 꼭 갔으면 좋겠다. 집안일이나 육아가 자신의 꿈을 내려놓게 되는 결과가 되어서는 안될텐데… 내가 더 노력해야 한다.

홍정우는 대화라는 것을 일부 나마 할 수 있게 되었다. 어제는 “아빠 재워줘”했더니 내 볼을 쓰다 듬으며 “아빠! 자장자장”을 우렁차게 외치고 가는 정도가 되었다. 누군가의 폭풍 성장을 바로 옆에서 경험할 수 있는 것은 어디서도 얻을수없는 큰 경험이다. 빨리 어린이 집을 가고 잘 적응을 해서 내 아내가 육아에서 조금은 부담을 덜었으면 좋겠다.

그래도 매년 그래왔지만 열심히 살았고, 새로 다가오는 새해도 열심히 살것같다. 다만 이제는 좀 앞날에 대한 대비를 하면서 살아야되는데, 아직 그부분에 있어서는 확신이 없다. 그래도 10년전 서른이 되었을때와 비교해서 모든것이 성장하고 안정되어 있으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항상 새해 인사는 이렇게 한다.

“내가 알았던, 알고있는, 알게될 모든 사람이 행복한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중에 제가 제일 행복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