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5B The Third Wave – track.1~10

내가 태어나서 제일 처음 산 테이프는 015B 3집 이었던걸로 기억한다.
엄마가 사용하던 aiwa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를 내가 학원 다니면서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였던걸로 기억하는데 워크맨만 있다고 노래를 들을 수 있던건 아니었으니.

015B 테이프를 사기 전에는 라디오에서 나오는 노래를 녹음했던것같은데.. 문제는 라디오에서 나오는 노래는 막판에 꼭 멘트나 광고가 나와버린다는거…
암튼 당시 4000원 정도 했던걸로 기억하는데 국민학교 5학년에게 작은돈은 아니었던걸로 기억한다.
2년뒤 중학교 입학했을때의 일주일 용돈이 2만원이었는데 (학교 준비물, 간식, 하루 왕복 240원하는 버스비까지 모두 포함한) 용돈이 꽤 많은 편에 속했으니까…
거금을 들여 좋아하는 가수의 테이프를 산다는건 그 테이프만 주구장창 듣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길거리에서 파는 가요 베스트 모음집(길보드라고 했던것같은데) 같은것도 있었으나, 그런건 워크맨을 망가트린다는 소문이 있어 사용하지 않았으니까.

암튼 앨범을 하나로 통채로 듣는다는건 좋든 싫든 1번 트랙 부터 마지막 트랙까지 모두 들어야함을 의미한다. 빨리감기와 되감기가 있지만 그 또한 배터리의 낭비를 의미하고 정확히 원하는 부분까지 감기는 힘들었으니까.
그런걸 모두 해결해주는 CD player 가 있었지만 난 diskman 같은걸 살 여유따윈 없었다. 그리고 앨범 하나에 12000원이라니… 그담으로 산 워크맨에는(그즘 게임기와 워크맨으로 용산에 단골이 생기기도 했었다.) 되감기와 빨리감기도중 소리가 안들리는 부분이 있으면 자동으로 감기를 멈추는 기능도 있었지만, 보통은 연필을 꼽아서 손으로 돌리는 수작업을 주로 했었던 기억이 있다.
각진 연필을 테이프 톱니에 넣어서 손으로 돌리면 빨리 감기를 할수있다.

지금은 대부분 모바일 앱을 이용한 스트리밍으로 원하는 노래를 선택해서 듣거나 인기가요만 추려서 순위대로 노래를 듣는다던가 한다.
최근은 업무하면서 음악을 잘안듣는데… 오랜만에 집중할필요가 있어서(응?) 아이튠즈를 보다가 앨범으로 정리 되어있는 콘텐츠들을 보니 그냥 이런 생각들이 들었다.
이전에 앨범을 하나 다듣고 테이프를 몇 개를 들고 다닐때보다 편해진것은 확실한데 낭만은 없어진것 같다는 그런 생각

그 낭만이 어떤것인지 모르겠으나 그 시절의 어린 감수성과 여유로움 그리고 여러 추억들이 아닐까 싶다. 하루 쯤은 그냥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인터넷도 되지 않는 공간에서 015b테이프가 든 워크맨 하나에 의지해 산책 또는 잠만 잘 수 있으면 좋겠다. 하지만 내 여건상 그럴 수 없으니 그냥 노래를 선택하지않고 그냥 앨범 반복듣기를 해야겠다. 쓸데 없는 생각 하는거 보니, 역시 봄이다.

새소리

우리집은 오래된 아파트인데… 집과 붙어있는 작은 도심형 어린이 놀이터가 있다. 우리집에서 서쪽 베란다로 보면 바로 보이는데..
아침마다 새 소리가 엄청 들린다.

서울에 살던 그 기억을 더듬어 봤을때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를 들어본적이 있었던가 생각해보면 그런것은 없던 것 같은데… 공원에 나무가 많은것이 한 몫 했으리라. 집 앞에 산책을 할 수 있는 공원이 있다는건 큰 축복이다.
작아서 한바퀴도는데 1분도 안걸리지만 ㅋㅋㅋ

나중에 놀이터에서 정우가 뛰어 놀다가 엄마가 베란다에서 밥먹으라고 부르는 모습을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긴 한데… 언제나 크려나…

참고로 지도상의 위치와 로드맵 링크를 걸어둔다

vivaldi

주 사용 브라우저를 비발디로 바꿨다.

그전에는 오페라를 사용하고 있었으나, 파이어폭스(한글 입력 때문에)의 대안이 없던것에 대한 선택지였으나. 예전 오페라 12이전의 DNA를 어느정도 담고 있다는 점이 나를 비발디로 이끌게 되었다.

예전에 즐겨사용하던 패널부분이 웹패널이라는 강력한 기능을 추가해서 다시 돌아와주었고, 예약어를 이용한 검색기능도 다시 살려두었다.
비발디의 기능은 Back to the Mac의 소개 글에 잘 나와 있으니 참고하면 될 것

오페라 링크까지 살지는 못했지만 뭐 이정도면 만족하고 사용할 수 있을것 같다.

예전에 크롬이 활개를 치기 시작할 시점에  브라우저의 속도 경쟁이 어디까지 갈 것 인지에 대해서 고민을 해본적이 있었고, 블링크엔진이 어느정도 자리를 잡은상황에서는 내 입맛에 맞는 기능을 가진 브라우저를 선택하는 시대가 올것이라고 판단했는데… 대부분은 OS에 설치되어있는 브라우저를 그냥 사용할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퇴직

내가 회사를 그만둔다는것이 아니고 요즘 업무를 하는데 있어서 가끔 마주치게 되는 경험이라 그 로그를 남겨보고자 한다.
(참고로 난 제주에 거주하고 있는 한은 퇴직은 쉽게 안할 것 같다. 그만큼 내 삶, 공간, 환경이 일만큼 중요하달까)

나도 회사를 여러번 바꾸었다. 그간의 회사를 그만두면서 나 또한 회사에 대한 퇴직의 이유를 대부분 상위 직책자와의 면담을 통해서 결정하고는 했었다.
면담시의 상위직책자의 반응을 보다보면 재미있는 경우가 많았다.
퇴사를 만류하는 대부분의 경우부터, 쿨하게 잘가라고 응원해주는 경우도 있었으며, 욕을 얻어 먹고 배신자라는 평가를 받은적도 있다. 몇 번의 케이스에서는 퇴사가 결정 되고 나서 정확히 왕따를 당한적도 있었다.
이런저런 리더와 상위직책자를 만나면서, 내가 직책자가 되면 ‘이런건 이렇게 해봐야지’, ‘저렇게 해봐야지’ 하는것들이 생기고 있었는데 퇴사시의 면담이 그런 생각 중 하나 였고,
실제로 시간이 흘러 흘러 나도 퇴사 희망자와의 면담을 해야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내가 퇴직 희망자와의 면담시에 고려하고 안내해야 할점에 대해 기록해두고 항상 참고 하고자 한다.

1. 퇴직희망자는 그 누구보다 많은 고민과 용기를 내어서 결정하고 면담 신청을 했을것이다. 결정 및 면담요청에 대해 충분하고 절대적인 존중이 필요하다.
2. 퇴사를 희망하는 이유에 대해 들어보고 그것이 본조직에서 정!말!로! 해결해 줄 수 있는 부분인지 확인하고 연구한다.
3. 면담은 세단계로 이루어 져야 한다 (퇴직희망자의 퇴직사유에 대한 공유 단계, 퇴직사유에 대한 회사/조직의 제안 및 협의점 도출, 퇴사자의 최종 결정)
4. 안타깝게도 퇴사로 최종 결정시에는 그친구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방법을 최선을 다해서 찾아본다.(실제 퇴직일 까지의 조직으로서의 지원, 선배로서의 조언-꼰대?, 좋은직장 찾아주기, 퇴직후 이직 하는회사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는 경우 잘말해주기 등등)
5. 웃으며 빠이빠이

그리고 선배로서의 조언은 내 경험상의 의견을 담아서 웹 퍼블리싱 하는 친구에게 보통하는 이야기가 있다.(서버 사이드 개발자는 내가 잘모르는분야라서…)
1. 같은 고민을 하는 동료가 많은 조직을 선택해라(선배에게는 배우고, 후배에게는 알려줄 수 있는 기회는 하늘에서 내려주는것이다.)
2. 평소에 공부 안하면 환경 바뀌어도 안한다. 역량 공부는 셀프다. 업무를 통한 공부는 빠른 추진력을 받을 수 있는것 이지 절대 최고의 방법이 될 수는 없다.
3. 월급은 한달이라도 밀리면 쿨하게 바로 나와라.

이렇게 적어놔야 안까먹지..

퇴직 면담을 하고 나면, 마음 한켠이 허해진다. 내가 더 잘할 수 있었는데… 내가 못해서 그들이 떠나가는거라서 인듯
그냥 뭐랄까… 나랑 면담 하던 그들도 예전에 그랬겠지? 아님 속이 시원했을라나?

adle.deute

어린이 날 다음날이었다.
몸에 대한 이상을 느꼈던 아내와 함께 산부인과에 가서 우리에게 아이가 생겼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9달… 우리는 때로는 즐거워하고, 때로는 불안해하며 우리가 책임져야 할 한 생명을 맞을 준비를 했다.
주변 육아 선배들의 축하와 그 힘듬의 정도를 자랑하듯이 “그래도 뱃속에 있을 때가 제일 좋은 거야~ 나오면 다시 집어넣고 싶어 질 걸?”라고 해주는 조언 그리고 책, 인터넷 등등 정보의 홍수에서 헤엄쳐 다녔다.
그래도 사실 나에게 내 유전자를 물려받은 생명이 생긴다는 사실은 실감은 나지 않았고 준비도 막연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 포스팅에서도 그랬듯 난 닥쳐야 뭔가를 하는 성격이다 보니…

그러다가 지난 12월 18일 금요일 병원을 갔는데 의사선생님의 말이 3~4일 안에 나오겠는데?라는 말에 난 연달아 있던 회식을 취소하고 준비에 들어갔다. 딱 회사 송년회인 23일 하루만 빼고 23일 아침부터 아내에게 몸상태를 계속 체크하며 혹시 몰라 집 근처에 회식 장소를 잡고, 난 불안과 기대와 취함을 즐기며 즐겁게 음주를 즐겼다. 그리고 집에 가서 아내와 잠이 들었는데 배가 갑자기 아프단다. 뭐 이런..

바로 병원에 달려가서 우리는 아이를 맞을 준비를 했다. 초산이라서 오래 걸리는지 고통만 심하고 잘 안 나왔다.
아내는 죽을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9시간을 그렇게 버텼다… 잠도 못 자고 컨디션도 안 좋고 힘도 다 빠져버린 상황에 아이는 아직 준비가 안되었다고, 수술로 아이를 나아야 할지도 모른다고 하더라.
엄청 짜증이 났다.. 9시간 동안 우리는 뭘 한 건가. 이럴 거면 처음부터 그냥 고생 않고 수술할걸…

아까워서라도 좀 더 참아보자는 간호사의 말에 나는 좀 더 버텨보자 했지만, 당사자인 아내는 죽을 표정으로 수술하자고 했다. 그래서 바로 수술하기로 결정하고 수술실에 들어간지 10 분도 안돼 우리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리고 한 시간 후 마취에 취해서 멍한 아내가 실려 나왔다. 둘을 보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아들을 보면서 ‘이놈의 자식 내 마누라를 괴롭히다니 빨리빨리 나올 것이지’와 아내를 보면서는 친한 후배의 축하 코멘트처럼 ‘저 어린것(아내를 칭한다)이 무슨 죄가 있다고’라며 짜증, 분노, 기쁨, 희열 모든 감정이 한 번에 올라왔다.

그렇게 우리의 아이는 태어났다. 2.98kg에 12월 24일 오전 10시 59분이었다. 이 병원은 출산 후 아이와 엄마를 격리하지 않고 직접 아이를 보게 하기 때문에 거의 잠을 못 자고 있지만 덕분에 많은 걸 배우고 알아가고 있다. 내가 분유를 타고, 온도를 재고, 먹이고, 트림을 시키고, 속싸개를 돌돌 말아 재우고 기저귀를 갈 수 있을 줄 몰랐다. 아내는 수술 후유증으로 이미 자기 몸 추스리기도 힘든 세상이었다. 덕분에 내가 육아는 아직까지 아내보다 한수 위다 ㅋㅋ 반대로 물리적으로 잠을 못 자서 첫날은 거의 죽을 뻔했다. 술 먹고 이틀을 해장도 안 하고 꼬박 잠을 안 자고 밥도 안 먹은 거니까.. 다행히 처형님께서 오셔서 눈도 좀 붙이고 그럴 수 있어서 다행이다.

아이가 태어나니 확실이 많은 것이 다르게 보인다. 우리도 저 같은 과정을 겪으며, 부모님의 사랑을 받으면서 자라 왔을 것이며, 솔직히 그렇게 아기가 잘 생긴 건 아닌데, 나에겐 한없이 예뻐 보인다. 볼 때마다 신기하고.
월요일이 되어서 평일이 되면 출생신고를 하고 아들을 위한 적금을 하나 부어야겠다. 그 돈 모아서 맥프로도 사고, 아이패드도 사고, PS4도 사고 그래야지.

홍윤표의 아들 놈 첫 사진

앗녕?

닥치고 웹 표준